말풍선 하나 없는 산문만화 vol.001

첫 번째 이야기 : 움직이는 궁전
낡은 전자앨범 속에서 이 사진을 다시 꺼내 보았다. 아마 마흔 중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스무 해쯤 전의 일이다. 사진 속 사내의 얼굴은 이제 내 얼굴이 아니고, 저 차 또한 오래전에 사라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저 사내를 낯설게 바라볼 수가 없다. 저 사람은 분명히 나였고, 저 차는 분명히 나의 집이었다.
첫 번째 칸에서 무학은 산을 바라본다. 어디를 보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눈길은 차 안보다 먼 곳에 가 있다. 그 시절의 나는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았다. 한곳에 오래 머무르는 법이 없었다. 길이 끝나면 또 다른 길이 있었고, 산 하나를 넘으면 또 다른 산이 나타났다. 누군가는 그것을 떠돌이 인생이라 불렀겠지만, 나는 그것을 나그네의 삶이라 생각했다.
두 번째 칸에서 그는 차 뒤편에 앉아 있다. 남들이 보면 짐칸일 뿐이지만, 내게는 방이었다. 밥그릇이 있었고, 옷이 있었고, 책이 있었고, 잠자리가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작은 집이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넓은 집이기도 했다. 그 집은 땅에 뿌리를 내리지 않았다. 바퀴 네 개 위에 얹혀 비포장길도 오르고 산길도 건넜다. 어느 강가에서 멈추면 강가가 마당이 되었고, 어느 산자락에 서면 산이 곧 담장이 되었다.
세 번째 칸에서 무학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 아마 피곤했을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청송군 산불감시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적힌 '청송군'이라는 이름은 단순한 근무복의 표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그 시절 나를 먹여 살리던 밥줄이었다. 산불감시초소 20호. 내가 농담처럼 '무학봉'이라 부르던 그 산에서 하루 종일 능선을 바라보고 연기를 찾았다. 움직이는 궁전이 굴러가려면 기름이 필요했고, 기름값은 결국 누군가 벌어야 했다.
네 번째 칸에서 그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겨 있다. 나는 저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오늘 저 사진을 들여다보며 한참을 생각해 보았지만 끝내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저 사람은 부자가 아니었다. 가진 것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부족하다고 느끼지도 않았다. 내 나라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오늘 밤 잠자리를 스스로 정할 수 있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마지막 칸에서 그는 다시 먼 곳을 바라본다. 산불감시원 무학. 나그네 무학. 움직이는 궁전의 주인 무학. 그 모든 이름이 한 사람 안에 함께 살던 시절이었다. 다음 날 아침 안개가 끼든 비가 오든 맑든 상관없었다. 시동을 걸고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천천히 길 위로 올라서면 되었다. 그리고 또 다른 풍경을 만나고, 또 다른 하룻밤을 만나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면 되었다.
스무 해가 흘렀다.
저 차는 사라졌고, 저 얼굴도 사라졌다.
그러나 저 사내가 품고 있던 마음 하나만은 아직 남아 있다.
가난했으나 궁핍하지 않았고, 가진 것은 적었으나 세상을 넓게 가졌다고 믿었던 마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저 사진을 보며 생각한다.
저 차는 자동차가 아니었다.
그것은 한 나그네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내가 스스로에게 지어준 이름 그대로,
'움직이는 궁전' 이었다.
생명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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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목을 무학의 목소리로 듣고 보려면
https://www.youtube.com/watch?v=EAlFA1wb6q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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