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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시전투
1757년 인도에서 영국의 동인도(東印度)회사군과 벵골의 태수(太守) 시라지 웃다울라군이 벌인 싸움
벵골 태수 웃다울라는 영국 동인도회사와 그 직원의 밀무역이 벵골의 경제에 커다란 타격을 주고 있다고 항의하고, 영국인들을 캘커타시(市)에서 추방하여 양군은 충돌하게 되었다. 클라이브가 이끄는 영국군과 소수의 프랑스군을 포함하는 태수군은 6월 캘커타 북서방의 플라시에서 결전을 하였다. 병력은 태수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였으나, 부장(部將)들이 영국측에 매수되었기 때문에 참패를 당하고, 태수 자신도 배신한 미르 자파르의 아들에 잡혀 처형당하였다. 전후 미르 자파르가 벵골의 태수가 되었으나 그는 영국의 괴뢰에 지나지 않았고, 이로써 영국은 벵골의 지배권을 확립하고 인도 전토의 식민지화를 위한 침략의 교두보로 삼았다.
@플라타이아이전투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침공(제2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최대의 지상결전(地上決戰:BC 479)
아티카 평야와 접경하는 보이오티아 지방의 도시 플라타이아이의 근교에서 벌어졌다. 살라미스 해전(BC 480)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타격을 덜 받았던 페르시아 육상군은 북부 그리스에서 월동한 다음 재차 남진해서 그리스 연합군 지상부대에 싸움을 걸었다. 스파르타의 장군 파우사니아스 지휘하의 그리스 연합군의 중장보병부대(重裝步兵部隊)는 보이오티아 남쪽 키타일론산(山) 북쪽 기슭의 플라타이아이(플라테에)시의 동쪽으로 진출하여 마르도니오스 지휘하의 페르시아군과 장기간 대치(對峙)하였다. 그리스군은 보급로 차단 등 불리한 상황에 몰렸으나 승리를 조급히 서둔 마르도니우스의 허(虛)를 찔러 형세를 역전시켜 대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에 동원된 페르시아군은 10만, 그리스군은 8만을 헤아렸는데, 특히 약 3만 5,000명에 이르는 그리스 중장보병은 그 우월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이 싸움은 그리스의 자유를 지킨 결전(決戰)으로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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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맘때 야생화, 한국의 고택과 전통가옥, 물이 있는 풍경, 국보와 천연기념물, 세상의 모든 약초 약용식물, 곤충과 벌레를 찾아나서는 @muhak나구여! 여행 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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