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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성씨.
본관은 영양(英陽)·의령(宜寧)·고성(固城)·남원(南原)의 4본이 있지만, 모두가 같은 시조에서 분파된 혈족이다. 시조는 남민(南敏)으로, 본명은 김충(金忠)이다. 그는 원래 당(唐)나라 사람이었는데, 신라에 귀화하여 신라왕으로부터 이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남민의 7대손 진용(鎭勇)의 세 아들 중 맏아들 홍보(洪甫)는 영양, 둘째 군보(君甫)는 의령, 막내 광보(匡甫)는 고성에 각각 관적(貫籍)하여 각 파의 중시조(中始祖)가 되었다.
이 중에서 둘째 집인 의령남씨는 이조 개국에 공을 세움으로서 중앙정계의 중추에 진출하여 상신(相臣) 6명과 대제학 6명을 배출하였다. 개국공신 재(在)·은(誾) 형제 중 재의 후대에서 많은 경상(卿相)과 석학이 나왔다. 재의 손자 3형제 중 지(智)는 좌의정, 간(簡)은 예문관 직제학, 휘(暉)는 태종의 부마(駙馬)가 되었다.
이밖에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곤(袞), 세조 때 장군 이(怡), 생육신의 한 사람인 효온(孝溫), 소북(小北)의 영수 이공(以恭), 소론(少論)의 영수 구만(九萬), 영조 때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을 지낸 유용(有容), 순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공철(公轍), 철종 때 대제학을 지낸 병철(秉哲), 인조 때 우의정과 좌의정을 역임한 이웅(以雄), 정묘호란 때 평안도병마절도사로서 안주성을 사수하다가 자결, 순절한 이흥(以興)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이공의 형 이신(以信)의 세 손자 중 효종 때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선(吊)의 자손이 번창하여창명공파(滄溟公派)를 이루었다. 1960년도 국세조사에서는 2만 4028가구에 인구 13만 8536으로 성별순위가 258성 중 30위였고, 85년도 조사에서는 가구수 5만 3011가구로 전국 가구 구성비 0.5%, 순위는 274성 중 역시 30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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