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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천 오일장의 추억
소리로 듣는 자유인 생각
바람이 배웅을 받으며, 집에서 나와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끝나는 마을 어귀에서 35번 국도 영천 방면으로 우회전해서 몇백 미터 가다가 모계2리 마을버스 정거장 있는 곳에서 멈추었다. 그곳에는 중절모를 쓴 노옹들과 지팡이를 짚은 꼬부랑 노파들이 여럿 있었다. 할멈을 태운 할범이 운전하는 경운기가 다리를 건너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거의 칠십 전후의 노인들이고 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경운기가 다리를 건너온 후 나는 좌회전을 하며 노인들에게 목례를 했다. 허름한 농촌 버스가 와서 정거장에 멈추는 것을 보고 나는 화목장이란 것을 알았다. 화목장은 1, 6일이다. 이 숫자가 들어가는 날이면 노인들이 화목장 구경 가려고 이곳 정거장에 모인다.
내가 태어난 곳은 이곳 현서에서 영천 방면 노귀재를 넘어 그리 멀지 않은 지풍기미다. 지풍기미는 옛날부터 불린 옛 지명이고 지금 행정 명은 입석 2동이다. 내가 태어난 마을 지풍기미는 35번 국도에서 그리 멀지 않은 보현산중턱이다. 나는 그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고 마을에서 십 리 떨어진 자천면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 그때는 비포장 자갈길이었다. 육 년을 나는 왕복 이십 리를 걸어 초등교육을 받으러 면소재지인 자천을 다녔다. 그 당시 지풍기미에는 서른여 집이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논이 별로 없고, 그렇다고 밭도 넉넉지 않은 척박한 땅에서 여러 집이 살았으니, 집집이 겨우 목구멍에 풀칠하며 연명했다.
경작지가 부족하다 보니 산에 의존하는 삶이었다. 산은 땔감과, 먹을거리를 동시에 제공했다. 고사리, 참나물, 어수리 등 귀한 산나물이 풍부한 보현산은 지풍기미뿐 아니라 더 들어간 배나무지기 마을 사람들에게 생명의 젖줄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학교가 있는 자천면에 오일장이 서는 것을 알았다. 장날이면 나는 즐거웠다. 그 까닭은 학교를 마치고 장터를 돌며 누군가를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큰고모 내외였다. 그들은 장돌뱅이로 경북 일대의 오일장을 누비며 농산물을 유통하는 장사꾼이었다. 한쪽 눈이 성치 못했던 나의 큰 고모부는 시커먼 안경을 늘 쓰고다녔는데, 그는 추를 달아 무게를 재는 저울을 늘 가지고 다녔다. 큰고모도 마찬가지였다.
하략
글...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인, 무학.
낭독...글 읽어주는 강지식.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생명 있는 모든 것에 눈맞추고
♣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인
♣ 나그네의 구석구석 여행
♣ 이맘때 야생화, 한국의 고택과 전통가옥, 물이 있는 풍경, 국보와 천연기념물, 세상의 모든 약초 약용식물, 곤충과 벌레를 찾아나서는 나그네의 여행 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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