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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에
소리로 듣는 자유인 생각
나의 뇌 어디에 기억의 저장 창고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평소에 잠자고 있던 그 기억이 의지에 의해서이건 우연한 계기에 의해서이건 어떤 때 정확하게 인식이 된다. 오늘이 설이다. 내 기억에서 설에 대한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어렸을 적 설이 곧 닥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은, 할머니가 오일장에 가서 제수용품과 설빔을 사 오는 것이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상도 오지여서 명절을 앞둔 오일장에서 필요한 것을 미리 준비하는 것이었다. 필요한 것을 사기 위해서는 뭔가를 내다 팔아야 한다. 보리쌀이나 제철에 장만해 말린 고사리나 산나물 밭작물을 한 보따리 만들어 머리에 이고 할머니는 설장을 보러 가곤했다. 해가 넘어갈 무렵 돌아온 할머니가 푼 보따리에서 꺼낸 것 중에 돔배기를 숙부가 싸리꼬치에 엮어 정성스럽게 산적을 만드는 것을 보며 나는 설과 추석이 머잖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곤고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할머니는 설빔으로 손자를 위해 뭔가 꼭 챙겼다. 운동화나 옷을 받아든 나는 한 번 입어본 후 머리맡에 두고 빨리 설이 오기를 기다리곤 했다. 설날 아침에 새옷을 입는 기분은 어렸을 적 내가 느낀 최고의 기분이었다. 까마득한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어느 해 설 장을 보러간 할머니가 돌아왔을 때 설빔으로 목을 가릴 수 있는 두툼한 옷이 나에게 주어졌다. 나는 그 옷이 맘에 들었다. 새옷을 입은 나는 거울 앞에 서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며칠 지나 설날 아침에 나는 여느 때보다 일찍 일어나 그 옷을 챙겨입고 차례를 지낼 준비를 했다. 그 당시 내 집에는 두 명의 환자가 있었다. 나는 그때 그 두 분이 환자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단지 안방에는 할아버지가 작은 방에는 아버지가 일을 하지 않고 일년 내내 누워있다는 생각만 했다.
다른 집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바깥일을 하는 것을 보았지만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 둘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도 그때 몰랐다. 평소 구들장을 지고 누워있던 두 분은 명절 때면 마지못해 두루마기를 입고 조상들에게 차례를 지내야 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나는 설날이 되면 좋아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내가 특히 좋아한 음식은 유밀과와 돔배기 산적이었다. 돔배기는, 상어의 한 가지인 돔발상어로 주둥이가 길고 끝 쪽은 뾰족하고 두 등지러미 앞에 뿔꼴의 크고 날카로운 가시가 하나씩 있으며 몸빛은 푸른 갈색이고 가슴지느러미가 긴 난태생 물고기로 우리 나라 서남부 등지에 사는 바닷물고기로 만든 산적이다. 이것을 적당한 크기의 직사각형으로 곱게 썰어 싸리꼬치에 끼어 찐 음식을 나는 아주 좋아했다. 돔배기 산적은 내 고향에서는 명절과 기제사에서 반드시 준비하는 음식이었다. 차례를 지내고 음복할 때 내가 맨먼저 집어드는 음식이 바로 돔배기와 유밀과였다.
하략
글...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인, 무학.
낭독...글 읽어주는 강지식.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생명 있는 모든 것에 눈맞추고
♣ 생명 있는 모든 것을 사랑하는
♣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인
♣ 나그네의 구석구석 여행
♣ 이맘때 야생화, 한국의 고택과 전통가옥, 물이 있는 풍경, 국보와 천연기념물, 세상의 모든 약초 약용식물, 곤충과 벌레를 찾아나서는 나그네의 여행 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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